- 일자 : 12년 1월 15일 일요일
- 장소 : 고향집과 동네뒷산인 만덕산
지금까지 산행을 수없이 했지만서도 명절때는 한번도 빠지질 않고 고향집에서
명절을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이 명절을 고향에서 보낼 수 없기에
미리 고향에 들러 성묘를 다녀오게 되었다
전국의 유명한 산들도 아직 미답지가 많지만 그래도 수박 겉핱기로 어느정도 다녔다고
자만아닌 자만을 하던차에 좀더 넓은 세계를 늘 동경하며 마음이 동요되기도 하였다
물론 관광이 아닌 해외산행을 어디로 가볼까 하고 산에 다니던 분들과 얘기를 하다가
그래도 설산이 보고 싶어 네팔의 안나푸르나트레킹을 가기로 의견일치가
되어 이번 구정연휴 기간에 가보기로 하였다
네팔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포함하여 8천미터 이상급의 고봉이 여러군데 있지만
그런곳은 아무나 갈수가 있는 곳이 아니고 고산 경험이 별로 없는 분들은 트레킹 코스가
적당하다고 생각되어 트레킹을 해서라도 히말라야 설산을 맛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트레킹 코스 중에서도 비교적 경치도 좋고 고산 경험이 없는 분들도 다녀올 수 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기로 하였는데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에서도
중간 정도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오기로 하고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 왔었다
그래서 이번에 설 연휴에 다녀오기로 하였기 때문에 이번 설 명절은 고향집에 갈수가 없기에
네팔에 가기전에 미리서 고향집에 다녀오게 된 것이다
암튼 고향집에 가기전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 모셔져 있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산소에 들르고 그 이후에 고향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 그냥 보낼수가 없기에 예전 어렸을적에 많이도
오르내렸던 고향마을 뒷산인 만덕산에 다녀온다
고향마을 뒷산인 만덕산 안내도
장모님의 산소에 들르며
먼저 근처의 마재마을 즉 풍암저수지와 금호지구 사이의 중앙공원 구역의 주변에 있는 장모님의
산소에 이른 시간에 들러본다
생전에 장모님은 반주로 소주를 한잔씩 하셨는데...그래서 오늘 소주 한잔 올린다
장모님은 생전에 세째사위인 나를 끔찍이도 챙겨주셨는데
모두가 지난 세월이 되어 버렸다
1996년도 가을에 돌아가신 장모님의 산소를 직접 벌초도 하며 관리를 해오고 있는데 가까운 곳이지만
잘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
장모님의 산소에서
이른 시간이어서 날씨가 추운 관계로 표정이 좀 그렇다 ㅎ
장모님의 산소에 들러 절을 드린후에 다음은 장인어른의 산소로 향한다
장인어른은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의 3년전인 93년도 초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결혼을 하자마자 며칠후에 바로 돌아가셨다
물론 오래전부터 투병생활을 하셔서 매우 힘들어 하셨는데
세째딸의 결혼식을 하고서 세째사위인 나를 보고서 만족?을 하신후에 가시게 되었다
암튼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일찍 가셨으니 지금도 마음은 허전 하기만 하다
화순읍 만연산 자락에 있는 장인어른의 산소를 향해 가다가 입구의 동구리의 커다란 느티나무과
뒷쪽의 만연산을 담아본다
광주의 장모님 산소를 들른후에 곧바로 화순읍 만연산 자락에 있는 장인어른의 산소에 들른다
화순읍 만연산 산림욕장에 도착하여 바로 아래의 만연저수지를 내려다 본다
장인어른의 산소에서
장인어른이 술을 드신 모습은 보질 못하였지만 마눌의 말에 의하면
장인어른도 생전에 소주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를 올린후에 절을 드린다
내가 결혼 전에 장인어른은 지병으로 인하여 투병중이셨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세째딸인 마눌을 짝을 지어주고자 결혼을 서두르기도 하였다
물론 나도 마눌을 만나자마자 초 스피드로 결혼을 하여서 연애시절이 별로 없어 좀 아쉽기도
하였지만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세째딸을 데려왔으니 두말할 필요도없이
마눌은 살림도 잘하고 마음씨도 너무 착해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내가 그져 미안할 뿐이다
암튼 바삐 서두른 결혼이었지만 마눌이 너무 잘하고 있으니 서둘렀다고 해서 후회는 없다
마눌과 처음으로 만난후에 42일만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 일정이 좀 바쁘기도 하였다 ㅎ
장인어른의 산소를 담아보며
내가 결혼을 하고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 일주일 후에 첫 출근을 했는데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게 되었다
물론 그때는 처가쪽의 상황파악도 제대로 안된 새신랑이었지만 그래도 시골에서
잔뼈가 굵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비교적 새신랑이란 티가 안날 정도로 모든일에
최선을 다해 장인어른을 이곳에 모셨다
장인어른을 이곳에 모시기 전에는 이곳 산소 주변이 커다란 나무가 많았는데
내가 직접 톱을 들고 정리를 했는데 그때 처가쪽의 친척분들이
내가 장가를 오자마자 새신랑이 일을 너무도 잘한다고 매우 만족해 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처가쪽의 친척분들을 만나면 그때의 얘기를 자주 하신다
암튼 첫인상부터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런 일들은 내가 살아오면서
고향에서 수없이 했던 일이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세월이 어느정도 지났으니 멀리 떨어져 있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같은 곳으로 함께 모셔야 될텐데...
장인어른 산소 주변에 있는 만연산 산림욕장의 모습
아침 일찍 일어나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산소에 들른후에 이제 다시 집으로 향한다
성묘를 마치고 울집에 도착하니 마눌이 수고 했다며 정성들여 준비해준 아침을 먹고
자고있는 애들을 깨워 이제 고향마을로 향한다
고향마을에 도착하여 집에 들르기전에 먼저 어머니 산소에 들른다
어머니는 08년도 12월에 돌아가셨는데 벌써 3년이 넘었으니 참으로 세월이 빨리도 지나간 듯 하다
암튼 막내인 나를 그리도 챙겨주셨는데 어머니가 살아생전의 그때를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간절하다
그리고 딸만 둘인 내가 안쓰럽다며 꼭 아들을 낳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두딸도 좋다며 내가 그냥 이렇게 산다고 하였더니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 된다며
고향집에 갈때마다 어머니는 술한잔 하시고 둘째인 민영이를 불러놓고
남동생이 생기게 터를 잘 팔았냐고 물어보면서 둘째인 민영이를 좀 성가시게 하였다
암튼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늦게나마 노력?을 한 결과 지금 울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준서를 낳게 되었다
준서를 낳자 어머니는 너무도 좋아하셔서 마을 회관에 가실때마다 마을분들에게
손자 자랑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준서가 한창 이쁠때인 네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무척이나 준서를 이쁘다고 챙겨주셨지만 이제는 안계시니 무척이나 허전하다
어머니의 산소에서
어머니 산소에 들러 생전에 좋아하신 소주를 한잔 올린다
이곳 어머니의 산소는 어머니가 생전에 늘 말씀을 하신 곳이다
바로 옆에 농로가 있어 마을 분들이 오고가는 것을 보신다며 돌아가시면
이곳에 묻어주시라고 애타게 강조를 하신 곳이다
물론 우리는 이곳 말고 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모신다며 말씀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어머니를 너무도 고생을 많이 시켰다며 어머니는 아버지 옆으로는
절대로 안가신다고 하여 이곳을 늘 마음에 두고 계셨 던 것이다
그래서 형님과 나도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어머니를 모셨는데
모셔놓고 보니 자리는 너무도 좋은 곳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을 분들도 자주 지나 다니고 또한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 마을의 저수지와 고속도로가
잘 보여 어머니가 심심하지는 않으실 것 같다
양지쪽에 아담하게 모셔져 있는 어머니의 산소
이곳은 여름철이면 잡초가 무성하지만 부지런하신 형수님이 밭에 올때마다 잡초를 제거하여
어머니의 산소가 깔끔한 모습이다
이제 어머니 산소에 들른후에 아버지의 산소로 향한다
애들에게 차를 타고 가자고 했더니 애들은 걸어간다고 하여 먼저 내려간다
걸어서 먼저 고향마을로 내려가는 애들
내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농로는 이렇게 넓은 길이 아니고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그래서 산 밑에 있는 논과 밭에 농작물을 거두고 또한 거름을 나를때마다 이곳 길을 이용하여
지게질을 하면서 수없이 다녔던 생각을 해본다
마을 옆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도착하며
이곳 산소는 03년도 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년전에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의
산소를 이곳으로 함께 모시게 되었다
장손인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는데 농사를 짓고 있던 밭에 선대의 윗어른들을 이곳에
모셔서 한곳에서 성묘를 드리니 편하기는 하였다
그때는 한창 흩어져 있던 묘지를 한곳으로 모으는 이장을 많이도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잘 하지는 않고
화장을 한다든가 아니면 가족묘 또는 납골당으로 많이 하는 것 같다
바로 앞의 아버지의 산소에 도착한다
이곳 산소는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꼭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고향 부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을 이곳에 함께 모시게 되었다
제일 아래쪽의 왼쪽이 아버지가 모셔져 있고 우측의 봉분은 원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모실려고 했던 곳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옆으로 안가신다고 하고 또한 윗어른과 함께 계신걸 싫어하신다고 하여
이곳에 어머니는 모시지 않았다
암튼 집안의 장손인 아버지로 인해 가난한 종부로써 너무도 고생이 많으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좀 그렇다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다 본 고향마을
우측에 걸어서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는 애들이 보인다
아버지의 산소에 한잔 올리고 있는 애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술을 잘 안드셨다
소주와 다른 술들은 전혀 안드셨는데 아버지는 신식 이셨는지 맥주는 한잔씩 하셨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아버지 산소를 찾을 때마다 아버지가 한잔씩 하셨던
맥주를 올리곤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맥주는 올리면 안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생전에 드시지도 못한 술을
돌아가셨다고 해서 못드셨던 술을 드리는 것 보다 그래도 한잔씩 하셨던 맥주를 나는 드리곤 한다
산소 옆에는 형님이 애지중지를 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는 멋진 소나무 두그루가 잘 자라고 있는데
얼마전에 가지를 정리한 모양이다
이제 성묘를 마치고 바로 아래의 고향집으로 향한다
고향집에 도착하여 옥상에 올라가 고향마을을 담아본다
대나무가 있는 뒷쪽의 마을 뒷산에서 어렸을적에 겨울철이면 많이도 놀았던 곳인데
지금은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는 곳곳에 빈집들도 많이 보이고 또한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만 계시니
앞으로 10여년 후에는 우리 고향마을도 더욱 더 초라해질 것 같다
고향집 옥상에서 바라본 뒷산인 만덕산
군대가기 전까지 어렸을 적에 저곳 만덕산 정상 부근까지 나무하러 많이도 다녔는데...
당겨본 만덕산 정상
고향집에 들러 올때 각화동 공판장 주변의 가게에서 사가지고 온 굴 한망과 산낚지로 모처럼 두가족이 모두모여
맛있게 먹고 또한 술도 한잔씩 하게 된다
그리고 배도 부르고 해서 소화도 시킬겸해서 나혼자서 오랜만에 만덕산에 올라보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어머니 산소를 지나 마을 뒷쪽에 있는 덕봉지에 도착을 한다
이곳 덕봉지는 만든지가 약 50여년 가까이 되는데 어머니가 이곳 덕봉지를 만들때
일을 하러 다녔다고 하셨는데 그때 당시의 일당을 밀가루를 줬다고 하여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이곳 덕봉지를 밀가루 방죽이라 부르곤 하였다
암튼 이곳 소류지인 덕봉지는 내가 오래전에 낚시를 할때에 다른 곳에서 붕어와 잉어를
잡아다가 이곳에 풀어서 키웠다가 낚시를 했는데 그때는 손맛이 너무 좋았었다
물론 지금은 낚시를 하지 않은지가 오래 되어서 고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가물때에 물이 자주 마른 단점이 있는 곳이다
이곳 만덕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곳이 있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잡목이 심해 다니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은 몇년전에 산판을 한곳으로 오르기 위해 다른 길을 따라 오른다
그리고 바로 앞의 소나무 두그루의 우측과 뒷쪽으로 예전에 우리가 짓던 밭이 있었지만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데 이제는 거의 산으로 변해 가고 있다
우측에 소류지인 덕봉지가 보이고 건너편의 산 아래에 예전에 우리가 짓던 논이 보인다
저곳 논도 오래전에는 다랭이 논을 그나마 넓게 한다고 포크레인과 불도저로 농지개량을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은 아예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
암튼 우리 논과 밭은 거의 마을 끝의 산밑에 있어서 원없이 수작업으로 농사일을 했는데
다른 집들은 모두 마을 부근에 논,밭이 있었는데 우리집의 논과 밭은 거의 산밑에 있어서
거의다 수작업으로 농사를 지었다
모내기도 손모내기로 하고 벼베는 것도 낫으로 베고...
암튼 그때 농사일을 할때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원망하고 신세타령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추억만 떠올릴 뿐 부모님도 안계시고 또한 산으로 변해가고
있는 논을 볼때마다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이곳의 조그만 한 밭도 예전에 어머니가 농사를 짓던 밭인데 지금은 산으로 변한 듯 하다
암튼 예전에는 이러한 땅도 없어서 농사를 지을 곳이 없었지만 지금은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어서
거의 모두 폐농지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곳 주변에는 묘지가 많은 곳이다
약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묘지 문화가 번성하던 시절이어서 모두다 좋다는 곳에는
묘지를 조성하고 했었다
지금은 이렇게 하라고 해도 잘 하지는 않지만...
오름길에 바라본 모습들
이곳에서 바라본 조망은 그런대로 좋은 모습이다
바로 아래의 우리 마을의 운암저수지와 고속도로 그리고 멀리 불태산과 병풍산이 보인다
그리고 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밭인데 예전에는 형님이 손수 가꾸어 온 감나무 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을에서 거리도 멀고 해서 오래전부터 관리를 하지 않기에
이곳 감나무 밭도 산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암튼 이곳 감나무 밭도 예전에는 논이어서 농사를 짓던 곳인데 오래전에 밭으로 개간을 해서
묘자리라도 팔아보겠다던 아버지의 생각이셨는데 지금은 거의 쓸모가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물론 한때는 형님이 감농사를 지어서 감을 많이도 먹었지만
지금은 감을 구경하기도 힘이 든다
감나무 밭 입구에서 내려다 본 모습
이곳에서 바라보니 예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집에서 이곳까지 농사를 지은다고 지게질을 하면서 수없이 오르내렸는데 지금은 농사는 커녕
사람들도 잘 다니지 않게 되었다
좀더 당겨본 모습
마을 저수지인 운암저수지와 고속도로 분기점이 보인다
저곳 운암저수지도 어렸을 적에는 붕어 낚시가 잘 되던 곳인데 지금은 낚시하는 사람들이 거의 안보인다
물론 피라미의 성화와 이제는 배스까지 있어서 그런다나 어쩐다나...
이제 산으로 오르며
몇년전에 산판을 했던 길을 따라 오른다
이곳의 산은 예전에 나무(일명 짝다리)하러 다녔던 곳이어서 추억이 많은 곳이다
우리 마을에서 짝다리는 소나무 죽은 가지를 말한다
올라가면서 뒤돌아 본 모습
어느정도 오르다 보니 저 윗쪽에 서어나무등이 보인다
오름길에 우측을 바라보니 멀리 월봉산 뒤로 반가운 무등산이 보인다
당겨본 월봉산과 국수봉 뒤로 무등산이 보인다
무등산을 좀더 가까이
바로 앞의 서어나무등과 우측 멀리 무등산을 바라본다
문재에서 올라오는 능선길을 만난다
이곳 능선에 올라오니 예전에 없던 운동기구까지 보인다
능선에 올라오니 문재에서 올라오는 두분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서
어디서 오셨어요? 했더니 창평에서 오셨다고 그런다
서어나무등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서어나무의 모습
오래전 어렸을 적에는 이곳 서어나무등에 커다란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서어나무는 오래전에 고사되어서 지금은 쓰러진채로 거의 흔적만 남아있어서 안타가운 모습이다
쓰러진 채 밑둥만 남아있는 서어나무를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약간 오르막을 오르고
오름길 우측의 이곳 자리는 오래전에 조상님이 모셔져 있던 곳인데 오전에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했던
곳으로 이장을 해서 지금은 흔적이 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이다
전에 없던 안전시설도 보이고
또다른 안전시설이 나타난다
이곳에도 안전을 위해 투자를 한 모양이다
정상 도착전에 나만 혼자서 알고 있는 조망바위에 도착한다
내가 먼저 올라오다가 창평에서 오신 두분을 이곳으로 모시고 왔는데
이분들은 이곳을 당연히 모르신다고 그런다
물론 길이 없는 곳으로 약 50여미터 정도를 내려와야 된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에 정상이 보이고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물론 이곳이 정상보다 조망이 더 좋은 곳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
창평에서 오신 분도 조망이 좋다며 이런곳이 있었다며 만족해 하신다
조망바위에서 조망을 즐기신 두분
암튼 이분들은 이런 곳으로 오실줄을 모르는데 나로 인해서 쌩길?로 조금 내려 오셨는데
기분이 어떠하실지 모르겠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들
바로 앞에 고향마을이 보이고 멀리 추월산과 병풍산까지 보인다
당겨본 추월산과 금산리
저곳 금산리는 예전에는 대덕면 중에서도 오지여서 따로 초등학교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초등학교는 없어졌지만 이제는 살기좋은 마을로 변하였다
언제부터인가 귀농을 한 젊은 사람들로 인해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또한 유명한 시목단감을
생산한 곳이어서 방송에도 자주 나오곤 한다
조망바위에서 당겨본 고향마을과 저수지 그리고 대덕면 소재지
우리 마을의 앞뒤로 산에 막혀 있어서 그리 좋은 터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마을이 雲巖(운암)리 여서 (구름운,바위암) 나의 불로그 닉을 "구름바위"라고 지었다
조망바위에서 당겨본 고향마을
고향마을 바로 앞에 앞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겨울철이면 해가 빨리 넘어가는
단점이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마을 집앞에 바로 냇가가 있어서 어렸을적에 수영을 하며
놀았던 추억이 많기는 하다
대덕면 소재지도 당겨보고
문재고개 즉 대덕터널 윗쪽도 당겨본다
예전에는 저곳에 숙박시설인 언덕위의 하얀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요양시설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저곳 문재를 가을철에 지나쳤지만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
조망바위에서 무등산을 다시 당겨보고
이제 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간다
조망바위에서 조망을 하고서 정상적인 길로 열심히 올라가신 두분
다시 능선에 도착하여 정상을 향해 진행한다
정상 직전의 오르막
이곳은 아직도 제법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오래전에 이곳에 우리 애들과 형님 애들인 조카들을 데리고 왔을때 이곳에서 신발로 썰매를 탄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애들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얘기를 하기도 한다
암튼 이곳 정상 아래의 경사진 곳에 약 30년 전까지만 해도
억새 군락지가 있어서 이곳까지 올라와 억새나무를 하러 올라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억새는 사라진지가 오래되고 그 자리에는 각종 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상 바로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왼쪽은 호남정맥 길로 이어지고 우측은 만덕산 정상이다
정상 입구의 이정표를 당겨본다
만덕산 정상에 도착하며
이곳 만덕산 정상은 그리 조망이 좋지 못하다
예전에는 이곳 만덕산 정상이 할미봉이란 명칭이 없었다
다만 정상 조금 아래쪽에 할미바위가 있어서 할미봉이라고 부른 모양인데
아마도 최근 산행인구가 많아서 이곳 만덕산도 찾는 분들이 많아서
면사무소와 청년회에 할미봉이란 명칭과 함께 정상석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정상석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멀리 무등산과 화순의 모후산 그리고 왼쪽에는 백아산까지 보인다
정상에서 바라본 백아산과 모후산
날씨가 그리 좋지 못해서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모후산을 좀더 당겨보고
백아산도 좀더 당겨본다
정상 주변
정상에서 약 30여미터 내려오면 다시 조망처가 나온다
이곳 조망처에서 바라보면 정상보다는 조망이 좀 좋은 곳이다
정상 아래의 조망처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주변의 모습
창평면 소재지와 왼쪽의 남극루도 당겨본다
무등산도 다시 당겨보고
할미바위
이 바위를 우리는 고깔바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할미바위가 맞는지 아니면 고깔바위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암튼 이곳 만덕산에서 제일 인상적인 바위인데 바위 주변의
잡목을 제거해서 잘 보였으면 좋겠다
다시 정상에 올아와 두분께 인사를 한 후에 먼저 내려선다
정상을 내려와 다시 서어나무등에 도착을 하여 이곳에서 왼쪽을 내려간다
이곳 서어나무등에서 옛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잘 다니질 않고
또한 산판을 한 이후로 길의 흔적도 사라져 버렸다
내려오는 길에
이리저리 내려오다보면 커다란 서어나무 두구루가 나타난다
이곳 서어나무도 예전 모습의 그대로 인것 같은데 오래전에 정상과 이곳 주변에서
땔감의 나무를 하고서 이곳 나무 주변에서 쉬었다 가는 추억이 있는 곳이다
암튼 이곳 서어나무에서 옛추억을 떠올려보다가 다시 내려간다
이제 다시 감나무밭에 도착을 한다
이곳 감나무밭도 이제는 관리를 하지 않은지라 잡목이 많아진 듯 하다
이제 산을 내려와 내려가는 길에 다시 바라본다
암튼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겸해서 오랜만에 고향 뒷산인 만덕산에 다녀오니
예전의 추억이 간절하다
마음은 예전 그대로 이지만 내몸을 비롯하여 주변의 모습들은 변해가고
있으니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겠는데 세월의 이치가 이러니...
그리고 이 사진은 다른분의 사진을 빌려온 사진이다
이제 며칠 후에 떠나게 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일정에 포함된 곳인데
이곳 베이스캠프 주변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남벽 부근의 모습이다
베이스캠프 고도가 4130미터 인데 아마도 이곳 고도로 인해 조금은 염려가
되지만 사실 이곳의 모습을 보려고 트레킹을 간다고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저곳 안나푸르나 정상 정복을 위해 오르신 분들은 이곳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이용하는게 아니라 반대쪽에서 주로 공략을 한다고 한다
안나푸르나 정상 정복을 위해서는 비교적 쉬운? 코스인 반대편에서 일반적으로
오르는데 이곳 방향은 히말라야 중에서도 3대 거벽으로 꼽히는
안나푸르나 남벽 코스이다
얼마전에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 일행 세분이 저곳 안나푸르나 남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저곳 어딘가에 박영석 대장을 비롯하여 세분이 잠들어 있는데
일반적인 트레커들은 저곳에는 갈 수가 없다
정보에 의하면 저곳 남벽 입구까지 보기에는 바로 갈수가 있을 것 같지만
거리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암튼 저곳에서 유명을 달리한 박영석 대장 일행분들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기도 하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최고 목적지인 베이스캠프(ABC) 주변의 모습이다
며칠 후(20일 새벽 01시에 광주 출발- 인천공항 07시 30분 출발)에 출발하여
우리도 저곳에 가는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물론 저곳의 멋진 설산의 모습을 보기위해 수많은 고행의 길을 걸어야 되겠지만...
암튼 이번 설 명절 연휴에 다녀오기로 하여 이번에 미리서 고향마을에 들러 성묘를
하고 왔는데 기대했던 것 만큼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물론 날씨도 협조해주고 모든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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